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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일어남> 대한 짧은 소고



우리는 여전히 어둠 속에 서 있다.

예멘의 난민 400명이 제주도에 표류했다. 난민 수용 거부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은 20만명을 넘었고 청와대는 답변 대신 청원 자체를 삭제했다. 우리는 그런 지형 위에서 난민을 소재로 다룬 아이웨이웨이와 마리아 코르쿠타의 예술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는 예술과 현실을 겹쳐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야기의 언어들은 현실에 닿지 못하고 쉽게 흩어져 버린다.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국경선에서 이루어진 두 작업은 카메라에 난민을 담았다. 웨이웨이 작업은 피아니스트였던 난민에게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해주는 작업이었다. 그는 분명 자리를 잃은 피아니스트에게 아름다운 새 자리를 찾아주고 싶었을 것이다. ap통신이며 bbc며 세계의 미디어들이 스타 작가의 신작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몰려 들었고, 경계에는 폭우가 내렸다. 비와 함께 늪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하얀 그랜드 피아노는 작가의 명확한 의도 자체가 너무도 쉽게 스펙타클로 환원되어 버림을 반증한다.

코르쿠타의 작업은 국경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 경계를 넘어가는 난민들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이었다. 색색깔의 옷을 입고 바리바리 짐을 싼 커다란 가방을 맨 채로 가족과 손을 잡고 그 경계를 지나는 이들의 상황은, 누군가가 ‘저들은 난민이고 국경선을 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해주기 전에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 아이들은 놓여진 카메라를 힐끔 쳐다보기도 하고 손을 들어서 인사해주기도 한다.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는 집 잃은 자들의 비극은 그 순간 완전히 무력화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봉기>라는 이름의 제목의 전시에 소개되었다.


우리는 두 작업의 차이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논쟁했다. 웨이웨이의 작가성이 그의 퍼포먼스를 스펙타클로 만들어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인가? 웨이웨이의 작업은 작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코르쿠타의 작업은 작가의 개입이 없었다는 점이 두 작업을 다르게 하는가? 두 작업에 제기되는 윤리적 질문들을 미학적으로 어떻게 넘어서야 할 것인가? 만약 우리가 그 답변을 찾는다면 우리에게(혹은 그들에게) 진정으로 남는 것은 결국 무엇이 되는가?


우리는 이전에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우리에겐 이미지의 위상에 대해 논쟁도, 이미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도 부재했다.

감독이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군함도의 모든 인물을 살려냈을 때, 군함도의 상상 불가능한 현실을 대탈출의 스펙타클로 그려냈을 때, 사람들은 그 영화에서 일본인을 다루는 방식에만 주목하여 그 영화가(혹은 감독이) 친일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의심하고 분노했지, 그 사건을 재현하는 카메라의 윤리에 대해서는 전혀 논하지 않았다.

한스 페터가 전하려고 했던 광주의 사진들. 그것들이 어떤 사진이었는가는 아무도 명확히 다루지 않는다. 한국인의 아픔을 이해한 푸른 눈의 외국인, 그 이상 그 이하의 미담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사건에서 이미지는 폭로의 수단으로 아주 쉽게 전락한다. 그 이미지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전달되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타인의 비극을 재현하고 전시하는 것, 그것이 자신을 아프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은 이미지일 뿐인데 왜 고통을 받는 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국에는 동시에 존재한다. 두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라운드 테이블의 마지막 질문은, 디디 위베르만이 끌어올린 이미지들을 우리는 어떻게 일으켜 세울 것이냐에 대한 것이있다. 디디 위베르만은 실제의 역사에 많은 빚을 진다. 프랑스 혁명, 6.8 혁명 등등, 너무도 쉽게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도처에 널려있고 철학자는 그 위를 향해 솟아오르는 움직임을 비유로 삼아, 보이지 않던 이야기들을 쉽게 끄집어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떠한가? 419 518 43… 이러한 것들은 뒤에 어떠한 명사를 붙이지 못한채로 두 세 조합의 숫자로만 겨우 이루어져 우리의 입을 배회한다. 우리는 일어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모르는 채로, 추악한 진영논리에 의해서 어떠한 공통의 합의 하나 없이, 그냥 어둠 속을 걷고 있다.


존더코만도가 네 장의 이미지를 치약 뚜껑에 숨겨서 가지고 나온 그 순간과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수천, 수만의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어떤 이미지를 어떻게 건져 올려야 할 것인지는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 일으킴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따라서 이미지의 서사는 완전히 새로운 토대 위에서 쓰여져야 한다. 우리는 라운드 테이블에서 발굴의 고고학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당위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고고학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서도 질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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