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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2018년의 두 일기

ㅅㄴㅐ 2020. 9. 8. 14:40

일기 두 가지를 발견해서 같이 묶어 올려 둔다

 

2018년 9월 16일

폰 정리하다가 발견한 메모인데 읽을 수 있게 문장으로만 다시 구성했다. 어디 다시 쓰일 종류의 글도 아니라 그냥 이대로 공개...

지난 여름 서울시립미술관의 보이스리스 전시에서 소개된 히와K의 <사과향 레몬> 작품과 작가의 아티스트 토크를 보고 느낀 짧은 감상.

<사과향 레몬> 이라는 달콤하고 낭만적인 제목은 사실 시위에 쓰이는 최루탄의 효과에 대한 것이다. 최루탄에서는 마치 사과향과 비슷한 냄새가 나며 그 냄새를 맡게 되면 눈물이 나오고 구역질을 하게 되며 심한 경우 정신을 잃기도 한다.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입 안에 레몬을 문다. 레몬을 문 채로 사과향을 맡으면서 앞으로 전진한다.

남자는 하모니카를 불면서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다. 그가 하는 행위는 정신 없는 시위대 속에서 아주 작은 균열을 낼 뿐이다. 사람들의 고함 속에 아주 작은 하모니카 선율은 딱 그정도의 존재감을 상징한다. 개인이 거대의 제도와 맞서 싸울 때 할 수 있는 총량. 피흘리고 쓰러져가는 시위대 속에서 최루탄에 눈물흘리며 하모니카를 불기.

토크 시작 전에 그는 강하게 이야기 했다. 핸드폰도 꺼주시고, 노트북도 꺼주세요. 온전히 제 얘기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그의 예술가적 기질에 압도되어 들고 있던 폰을 내려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토크는 들숨과 날숨으로 가득찼다. 그는 파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지난 40년의 최악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테러리즘과 IS, 물밑에서 자행되는 우리가 눈감고 애써 무시하는 그러한 끔찍한 모든 것들까지. 우리가 지금 숨을 쉬고 있고 그 파국을 느끼고 있음을 인지하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조차 못하는 채로, 또는 적극적으로 무시하면서 그 시간을 흘려보낸다. 핸드폰이나 만지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말을 하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그 파괴를 느낄 것을 강요했다.

작가는 처음부터 데리다나 들뢰즈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대신에 그는 갑자기 모하메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하메드가 말하기를.. 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의 종교에 대한 신념의 이야기이면서도 놀랍게도 철학자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모하메드는 저항에는 세 가지의 층위가 있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복종함으로써의 저항이다. 명확하게도 그것은 아주 먼 철학자 헤겔의 노예의 변증법과 한 쌍으로 맞아들어가는 이야기였다.

작가는 모하메드에 기대어 최종의 저항으로서의 복종을 말했다. 우리가 더이상 어찌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을 인정하고 그것을 돌아보는 것만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깨닫기. 우리 이 파국을 감각하자고, 우리가 무너지고 있는 것을 우리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자고.

아티스트 토크 뒤 그에게 쏟아진 질문은 그의 패시미즘적, 혹은 니힐리즘적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복종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의 말은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으로 들려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되나요? 그러한 질문들 앞에서 작가는 그저 한숨을 푹 쉬었다. 작가는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저는 지쳤어요. 작업을 계속 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나는 완전히 허무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것은 벤야민이 말하는 퇴조의 노래와 매우 닮아 있다. 아우라는 소멸할 것이다. 시대는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하는, 그런 비극으로만 들리는 이야기들. 사람들은 벤야민의 퇴조의 노래를 파국의 도래로 인식한다. 그가 하고 있는 모든 언어들은 종말을 가르키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끝도 없는 어둠 속을 헤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다 명확한 것은 자멸이 너무나도 확실한 피흘리는 시위대 속에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것이 아니라 하모니카를 불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이 시대에 복종했다고 털어놓지만, 그 단어를 언제나 저항이라는 단어와 항상 병치하며 자신은 니힐리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해서 말한다. 아주 아주 힘들고 병든 목소리로 계속해서 크게 숨을 쉰다.

보이스리스 전시가 그리는 지도는 바로 우리가 이 어두운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우리의 입장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에 대해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난 카셀을 둘러싼 수많은 질문은 사실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예술이 세계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게 역사를 통해서 드러났다. 그럼에도 예술은 왜, 자꾸 어렵고 복잡하고, 아무도 하지않는 이야기를 하는가? 왜 하려고 하는가?

난민들이 몰려온 제 1세계의 공허한 외침은 그 자체로 역설을 드러낸다. 그 변주를 2018년 대한민국 지형에서 하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를 남아있게 하는가? 예멘의 난민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20만을 넘겨버린 한국의 사회에서, 목소리 없는 자들을 바라보는 전시를 하는 것은 대체?

보이스리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한다. 이 전시의 지속 자체가 현재의 대한민국의 기이한 지형에서 우리가 최소한으로 취할 수 있는 태도라고 고집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하며 작품을 지속하는 히와 k의 모습을 겹쳐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게 무화되고 아무 의미 없이 흩어져 버릴 것을 알면서 꿋꿋이 이야기를 하기. 예술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잃어가고 있음을, 우리가 소멸하고 있음을 가시화시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아주 깊은 한숨과 함께. 예술이, 전시가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 하락속에서 하락하고 있는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다. 복종이라는 것은 세계를 감각하는 최우선의 과제이다.

 

*

 

정확히 모르겠는데 이것도 2018년 8-9월 즈음 쓴 것.

 

심란해서인지 더워서인지 잠이 안 와서 노트북을 뒤적거리다가 쓴 작년의 이맘때 글 발견ㅋㅋㅋ 러시아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쓴 글인듯하다. 오타도 있고 비문도 많고 무엇보다 떠오르는 대로 적은 완결된 글이 아닌데(무엇보다도 리얼 아무말대잔치인데) 뭔가 지금도 비슷한 마음이라 그냥 올려본다. 내일 아침에 지워질 수도 있음ㅋㅋㅋㅋ

우리의 여행은

너무도 당연하게도 대학원생들의 현실도피에서 시작하였다.

누구도 관심없는 주제였지만 미술학도이니 으레 공부해야하는 기독교미술의 도상을 외우면서 안드레이 루블리예프의 이콘을 보았다.

600년간 신성 그 자체였던 그림

졸업은 어렵다. 어려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생업 때문에 학업에 소홀해지기 때문도 있을 것이고, 공부의 양을 감당하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왠지 검은 사각형을 보면 졸업을 할 수 있을것 같았다. 말레비치가 아방가르드를 찾기 위해 실험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기.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명백하게 완성된 작품이 아니다. 그가 그린 수많은 검은 사각형 중에서 완성된 검은 사각형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확실하게 그의 첫번째 검은 사각형은 완성되지 않았다.

미술이 비물질적인 미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역사는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것에 의해 하나로 모아지는 경우가 있다. 말레비칭의 검은 사각형은, 그 사각형을 방사능 엑스레이로 촬영하였을 때 그게 완성되지 않은 과정 중에 있는 작품임이 드러났다. 그것은 그렇게 영원히 완성되지 않은채로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희극이랄지 비극이랄지 우리는 그렇게 많다던 검은 사각형을 어느 미술관에서도,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이 기간동안은 전시되어 있지 않다는 푯말 뿐이었다. 무슨 음모가 있느냐 쑥덕였다. 아니면 어떤 저명한 미술사학자가 그 여러개를 다 모아놓고 연구에 들어갔거나. 아무튼 덕분에 여행은 영원히 과정 중에 남게 됐다.

나는 가끔 아무 이유없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딱히 커다란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늘 그렇지만 나는 아무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진짜 앞 일을 고뇌하지 않는 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들을 떨쳐낼 수가 없는 밤은 분명히 있다.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더 애매모호하게 말했더라면. 또는 내가 더 분명히 말했더라면. 그러면 지금이 지금과 다를지? 답은 너무 쉽게 ‘아니’이다. 그래도 또 생각한다.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은 매사 슬픈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했다. 그렇다. 매사 슬픈 생각을 하니까 글을 쓰는 것이다.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경우의 수나 되뇌이면서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 내일에 대한 걱정보다 지난 어제를 계속해서 반추하느라 잠을 자지 못하는 자.

글은 과거를 잡아두기 정말 안성맞춤이다. 하얀 바탕에 꼬박 쓰여진 글씨는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이 된다. 이미 쓰여졌고, 내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내가 무엇이 서운했는지, 내가 무엇이 애틋했는 지가 명확하게 문장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글은 내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든다.

호프 자런의 랩걸은 여성 과학자가 얼마나 식물을 사랑하고, 공부를 하는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에 대해 스스로 꼬박 적은 글이다. 나는 그 글을 보면, 그 글씨들을 꼬박 적어내려간 자런의 시간들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 그렇게 따지면 거진 모든 글이 눈물겹지만 아무도 관심없는 풀들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 데 바친 글씨들은 특히 나를 더 애상감으로 이끈다. 이렇게 말하면 태현쌤은 또 나를 그런 걸 너무 잘 느낀다고 말할 것이다.

성당이야말로 최고의 아방가르드이다. 나는 동시대 미술이 재미가 없다. 현대 미술 전공자가 이런 말을 해도 되냐 싶냐만은, 신변잡는 글에서 대체 무엇을 바라리, 한다. 변화하는 전시환경과 매체 자체의 변화는 분명 흥미로운 소재이다. 하지만 미술이 그것 자체를 논하고자 한다면 그 재미는 반감된다. 혁명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어떤 현상만을 진단하는 작업들이 수도 없이 널려 있는데 내가 대체 무엇을 하리 싶다.

데이비드 조슬릿은 예술 이후, 라는 글에서 우리가 아는 예술 이후에 어떠한 것들이 발생했는가에 대해 적는다. (그 답은 이미지이다) 그는 세계의 격동적인 변화 이후에 성당과 같은 예술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미지들이 출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도 예술의 정점에는 성당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아우라의 정점에 있는, 세상 모든 아우라를 휘감은 예술 그 자체의 건물. 성당만큼 예술이 격상된 매체가 또 있으랴 싶다. 러시아의 모든 성당은 나를 그렇게 휘감았다. 아직도 고개를 처들어 천장에 박혀있는 이콘을 마주보는 상상을 한다.

쌤. 우리는 늘 서로를 쌤이라 불렀다. 나중에는 언니나 오빠로 칭하기가 힘겨워서 억지로 그 무게감을 덜어내기 위해 그렇게 불렀다. 선생님도 아니고 쌤. 대학원생이 아닌 누군가는 그 호칭을 처음 들었을 때, 선생님의 줄임말을 썼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무슨 애칭이냐며 물었다. 애칭이 맞다고 했다.

나는 사랑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 알랭 바디우가 아방가르드에 대해 논하며 너무도 뜬금없이 끌어들였던 그 사랑.

“세기는 사랑이 진리의 형상으로 격상된 위대한 세기였습니다.”

그는 사랑을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닌, 만남의 사유로서, 비대칭을 이루는 동등한 생성으로서, 자아에 대한 발명으로서 사유한다.

우리는 사랑의 무대에서 진리를 찾는다. 사랑은 우리의 만남에서 시작되었고 우리의 만남이 우리가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는데 어떻게 사랑으로 글을 시작하지 않을 수 있냐고 말했다. 다들 몸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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