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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와 크리스틴. 엄마를 증오하지만 사랑하기. 죽일듯이 미워하다가 다독이기. 시시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하기. 멀어지고 싶지만 계속 함께 있기.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스럽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기. 집을 떠나며 집을 그리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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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는 정말로 12년동안 찍은 영화라서 그 시간 동안 우리에게 발생했던 문화적 분기점을 일부러 건드린다. 해리포터의 출간이나 대유행하던 팝송같은 것. 그 요소들은 우리를 너무 쉽게 그 시간으로 부른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어떻게 그 때 이미 그게 아주 좋은 회상의 도구가 될 줄 알았을까.

나는 20세기 여성들을 보면서 20세기는 정말 격정적이었구나, 21세기의 나는 마리화나의 시대, 히피의 시대, 펑크의 시대, 텔레비전의 초창기와 같은 격정기를 살아가지는 절대 못할 것이다. 하는 애상감과 탈력감을 느꼈다. 어렸을 때, 세상의 전부였던 친구들 중 연락이 안되는 그 친구들의 얼굴을 한 번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영원히 그 친구들의 실제 삶을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잔인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문화의 궤적이라는 건 우리를 그 시간으로 아주 편안하게 이동시키는 소재이다. 그래서 레이디 버드가 건드리는 지점들이 보이후드와 20세기 여성들과 다르다는 점이 재밌었다.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미국의 낭만이 무너지고 모든것이 허상이었단것이 밝혀지던 그 시기.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그 사건들과 나의 소중한 시간을 겹치는 것은 모래를 씹고 있는 경험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사건들은 레이디버드가 보는 뉴스에서 친구의 입에서 엄마의 입에서 계속 등장한다. 음악과 낭만과 영화로 기억되지 않는 어떤 정말로 우리 삶을 지배했던 경험들은 그 자체로 우리의 기억과 얽혀 들지 않고 이질적으로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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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며 내가 나를 주인공과 같은 위치에 매우 쉽게 둘 수 있는 것은 나 또한 미션스쿨을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성경구절을 읽고 기도했고 일주일에 한번은 전교생이 모여서 합동예배를 드렸다. 동아리가 엄청 많았고 다 입시에 쓰잘데기 없는 동아리들이었다. 흑백 사진 동아리, 수화동아리, 중창 동아리, 댄스동아리...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일반적인 고등학교는 이런 동아리가 없다고 했다. 나는 딱히 종교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꽤 열심히 활동에 참여했다. 괴로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아예 재미가 없는것도 아니었다. 학교를 증오했고 학교를 사랑했다. 학교에서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는 나날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학교를 증오만 해서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 제한된 움직임 안에서 그렇게 재밌는 별거를 많이 찾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전부 별거 아니었는데 그 당시 그것들은 내 모든 전부였다. 매일매일 똑같은 날들에서 아주 조금 다른 구별점을 어떻게 그렇게 매일 찾을 수 있었던 거지 지금도 의문이다. 친구들이 있어서 그랬고 내가 가장 나를 사랑하던 시기라서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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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한 반만 늦게 쳐서 밥을 먹지 못한 날이 있었다. 급식소에 갔더니 아주머니들이 음식이 다 떨어졌다고 라면을 끓여주셨다. 우리는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그래놓고 반에와서 대자보를 써서 교무실 벽에 붙였다. 주동자가 누군지 모르게 사발을 엎어두고 주위를 빙둘러 이름을 썼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땐 안찰스가 정계입문한 샛별이었을 때였다. 우리학교엔 찰스와 똑같이 생긴 선생님이 있었다. 매일 신문의 1면에 그의 얼굴이 나왔다. 우리는 그거를 다 모아서 예쁘게 벽에 붙이고 교무실문에 붙이고 가면으로 만들고 선생님 책에 꽂아뒀다.

우리학교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남고생이 학교에 들어온적이 있었다. 학생주임이 잡을려고 핬는데 못잡았다. 우리가 청소도구함에 숨겨줬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여자애가 뭐가 좋냐고 캐물었고 걔는 그애의 오이비누향이 좋다고 했다(...) 여자애한테 가서 걔 변태라고 만나지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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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가 자신에게 핀잔을 준 선생님께 비열하게 복수하는 방법이 선생님의 차를 예쁘게 꾸며주기였을 때 나는 내 친구들이 너무 사무치게 떠올랐다. 레이디 버드가 별거 아니고 시시하다는 양 연극부에 이름을 적어넣고, 중요하지 않은 배역을 맡게 되어 심술이 내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즐겁게 연습에 참여하는 것을 보며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내 모든 것이었을 그 시기를 너무 자연스레 다시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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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아주 잠깐 살던 시기, 내가 있던 동네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새크라멘토는 거기에 비하면 대도시이다. 거긴 정말 아무것도 없고 공작과 무빙초와 선인장만 있었다. 난 지금보다 어렸고 어린맘에 거기 사는 친구에게 여기서 평생 살았으면 나중에 취직은 엘에이나 뉴욕에서 하고 싶겠다~하고 말한적이 있는데 걔가 너무 고요하게 뉴욕한번도 안가봤고 언젠간 가보고 싶지만 여기를 두고 거기서 살고싶은건 아니라고 해서 그렇구나 한 적이있다. 레이디 버드를 보며 이 대화가 계속 떠올랐다.

나는 내가 서울로 대학을 올것임을 한번도 의심한적이 없었다. 공부를 잘했고, 하고싶은게 명확했고, 내 자신에 대해 충만한 믿음만이 있었던 시기였다. 대학교 1학년 개강 이틀전 엄마가 얻어준 원룸에 누워 울면서 그 모든것을 의심했어야 했구나 하고 깨달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왜 다 안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혼자해야 한다는 게 뭔지 그 전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왜 서울에 가고 싶어했을까 거기서 살아본적도 없으면서. 내가 여기서 계속살면 여기가 언젠간 내 집이 될까 하고 계속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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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종종 만나는데, 이젠 졸업한지 한 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선생님과, 그 때의 일상과, 그 때의 힘듬에 대해 얘기한다. 사실 그 때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지금이 더 힘들다. 그래도 우린 그 때의 힘듬에 대해 열변한다. 나는 우리의 말 속에 단지 그것이 추억팔이, 노스텔지어 이상의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속에서도 계속 추억을 판다. 

예배에 열심히 참여한 이유는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서였다. 정말 하기 싫었다면 얼마나 한다고 내가 돈주고 사먹고 말지! 했을텐데 그것도 아니었던 걸 보면 증오 속에서도 친구들과 다같이 마룻바닥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경험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우리가 그 지긋지긋함에 대해서 계속 얘기할 수 있는 원동력은 그 때 그 사소한 것들이 지금의 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의 말처럼 그렇게 끔찍하기만했다면 절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분명 있었기에 괜찮을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있을수 있는 것이다. 레이디 버드가 새크라멘토에 대해 쓴 에세이가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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