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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dwinner - 가장


탈레반이 지배한 아프가니스탄의 도시가 배경, 너무 끔찍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아주 끔찍한 것과 아주 아름다운 것은 정말 잔인하도록 대칭인 쌍이다. 그래서 아름다움과 끔찍한 것은 아주 쉽게 겹쳐지고, 끔찍하게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끔찍해진다.

파르바나의 아버지가 탈레반에 잡혀간다. 남성을 대동하지 않으면 집 밖에 다닐 수 없는 나라에서, 어머니 언니, 파르바나, 어린 남동생으로 구성된 파르바나의 가족은 당장 먹고 살 만한 위기에 직면한다. 슈퍼에 가서 무언가 사오는 상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파르바나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소년이 된다. 밖에 나가기 위해서, 가족을 먹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파르바나의 아버지는 파르바나에게 말한다.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야기를 전해 왔단다. 다른 건 모두 잊어도 이야기는 가슴에 남지."


얼굴을 서로 보여줄 수 없고, 사진도 허용되지 않고, 글을 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을 하나로 엮고 그들을 지탱해주는 건 입으로 전달되는 이야기 뿐이다. 파르바나를 달래기 위해 아버지의 입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아버지가 사라진 후에도 파르바나의 입을 통해 계속된다.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민족의 전승문화이면서, 가족의 삶이고, 이 영화가 진행되는 방식이며, 생존에 대한 것이다.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파르바나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처음엔 아버지가 전해준 구술에 근거하지만(그것이 아버지와 파르바나를 잇는 수단) 아버지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가족은 계속해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 이야기는 남동생의 채근에 과장되기도 하고, 친구의 이야기가 합져지기도 하면서 아버지가 전해준 설화에 파르바나의 기지가 계속해서 덧붙여진다. 원래 이야기와 파르바나가 덧붙인 이야기는 어떠한 경계도 없이 마구 합쳐졌다 분리됐다를 반복한다. 모든 공포를 이겨내야 하는 밤마다 파르바나는 이야기를 계속할 것을 남은 가족들에게 종용받는다. 파르바나는 계속 이야기한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해서.

이야기는 허구에서 시작하지만 명확해게 실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실재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다. 이야기는 그 이질성들의 충돌지점에서 힘을 얻는다. 주변인들에게 이야기를 계속할 것을 종용받기 때문에 겨우 이어가던 이야기는 그 교차점에서 힘으로 변한다.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힘.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오던 거였다. 



절명에 가까운 순간에 파르바나가 크게 이야기의 주인공의 이름을 넋놓아 외치는 장면은 정말 가히 이 시대에 픽션의 효능을 말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듯.

무엇보다 끔찍한 현실을 픽션(주로 파르바나의 입에서 나오는)과 함께 겹쳐가며 풀어가는데 그게 너무 영리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파르바나가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영화의 파르바나 이야기 자체 또한 아주 훌륭한 이야기로 기능하는 것이다. 고통받는 이들의 감정을 전하고 그들의 꿈을 이야기하는데에는 참혹한 현실 자체만큼, 픽션도 똑같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만들기, 너무 많은 이미지, 이야기들 중에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끌어올리기. 나는 현대에서 이것이 예술이, 미디어가, 픽션이 해야할 것이라고 절실히 느낀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이런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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