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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

ㅅㄴㅐ 2015. 12. 22. 19:26



나는 집이 없는 사람입니다. 전쟁에 나가지요.
무슨 전쟁이지요?

무슨 전쟁이냐고요? 그야 아무 전쟁이면 어떻습니까. 최근에 신문을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전쟁은 항상 일어나니까요.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는지는 상관하지 않으시나요?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대우만 좋다면 말이지요. 판에 박힌 생활이 지루해지면 다이버 부부를 보러 옵니다. 두 사람을 보면 몇 주 안에 다시 전쟁터로 나가고 싶어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다이버 부부를 좋아하시잖아요?

물론이지요. 하지만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전쟁에 나가고 싶어집니다.



얼마동안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아무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각자 상대방한테서 멀리 달아나려고 애썼다. 앞쪽에 파랗게 펼쳐진 하늘이 있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니기에 함께 회상할 추억이 없었고 부부가 아니니 함께 설계할 미래도 없었다.



간단히 말해 에이브는 한 시간이라는 공간 안에서 프랑스의 라틴지구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유럽인 한 명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세 명의 사생활과 양심, 감정 속으로 휘말려 들었던 것이다. 



종종 사람들은 술 취한 사람에게 묘한 존경심을 보인다. 단순한 족속들이 광기를 지닌 사람들에게 보이는 존경심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두려움보다는 존경심에 가깝다.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이 있다. 



자네는 그녀가 나에게 날듯이 달려들 거라고 생각하나?

아닐세.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자네가 아주 점잖게 나가기를 바리지. 딕, 자네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은 남자잖아.

젠장! 그렇다면 얌전하고 쌀쌀하게 굴도록 하지. 그녀를 만날 때마다 마늘을 씹고, 고슴도치같이 수염도 기르겠네. 그녀가 달아나게 말이야.



한숨은 또 다른 질문의 시작일 뿐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무엇인가 의문이 들면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잊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 환자들은 영원히 원점을 맴돌듯이, 해답이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이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다행스럽게도 정상이었는데, 신경질환을 앓는 딸이 인생의 고통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이 꼭 발생하기 마련이고, 오히려 인생의 고통들을 통해서 그런 사건들에 대한 적응 능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녀의 아버지는 딸에게 인생의 고통을 겪지 않게 하려다가 그러한 적응 능력마저 상실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말았다. 딕은 별 할말이 없었다.



토미는 한 테이블에 앉아서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보통 그렇듯이 오늘도 술을 한 잔 마신 것 같았다. 주위를 압도하는 듯한 그의 분위기에 눌려, 동료들의 마음 속에는 그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항상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토미가 뇌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카페 안에서 가장 힘이 약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머리에 타격을 가해 죽일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영웅이 필요해요, 니콜. 영웅주의는 큰 무대에서 나오는거요, 작은 무대에서는 나올 수가 없어요.

나에게는 영어로 말하세요. 토미.

나와 이야기할 때에는 프랑스어로 합시다, 니콜.

하지만 의미가 달라요... 프랑스어로 하면 품위가 있어 보여요. 영웅답고 용감해 보이지요. 당신도 알 듯이 말이에요. 하지만 영어로 하면 영웅다울 수가 없고 용감해 보일 수가 없어요. 약간 이상하게 굴지 않으면 말이지요. 영어로 하면 내게 유리해요.

하지만 결국... 영어로 하더라도 나는 용감하고 영웅답소.



딕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말해야 해요.

내가요? 내가 그에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말해야 한다니!




*




읽다가 깔깔거릴 정도로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지만..... 읽는 내내 너무 부끄럽기도 했다. 


소설은 진짜 헉, 할 정도로 피츠제럴드의 생애를 그대로 따라간다. 심지어 본인이 아내 젤다를 두고 잠깐 한 눈 판 거에 영감받아서 소설을 쓴거임ㅋㅋㅋ 미친거 아냐??

사실 이 소설뿐만 아니라 모든 피츠제럴드의 소설이 그렇다. 소설이 묘사하는 남자주인공은 항상 피츠제럴드고 여자주인공은 항상 젤다임. 


개츠비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서 한 사람이 THE POOR SON OF A BITCH... 하고 읊조리는데, 아 진짜 미치겠다. 결국은 본인이 본인을 묘사하는 말임.. 수줍은 자기소개... 개츠비가 딕이며 딕이 피츠제럴드다. 아 이사람 도대체 무슨 염치가 있어서 소설을 이렇게 쓰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자기 연민이 이렇게 투명하게 된다는 것도 메타적으로 자신을 볼 줄 안다는 것이니.... 작가로서는 확실히 비범하다고 해야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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