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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린저 평전 중

ㅅㄴㅐ 2015. 11. 14. 17:32

사실, 샐린저는 한 블록만 걸어갔더라면 자신의 작품을 팔지 못해 고민에 빠진 피치제럴드의 모습을 아파트 창문 너머로 엿볼 수 있었을 것이다. 피츠제럴드가 처음으로 맨해튼에 왔을 때는 샐린저가 태어나고 6주밖에 지나지 않았을 시점인데, 그는 92번가의 렉싱턴 애비뉴 1395번지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당시 샐린저가 살던 파크 애비뉴에서 모퉁이만 돌면 볼 수 있는 아파트였다.

 

요령은 유행하던 오 헨리 풍의 근사한 결말을 보여주는 단순한 이야기였다. 독자들을 미소짓게 만들고 잘 팔리기 위한 목적으로 쓴 글이었다. 이 소설에 등장한 인물들을 따라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십삼년 전 군에 자원입대한 스콧 피츠제럴드를 뒤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샐린저는 요령을 쓴 후에 육군에 자원했다.

 

평소 그는 단 한번도 헤밍웨이나 그의 작품을 존경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셔우드 앤더슨이나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작가들을 존경했다. 따라서 샐린저는 헤밍웨이와의 만남 자체를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앤더슨과 피츠제럴드의 기분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은 이 편지에서 가장 신중한 부분이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샐린저는 비평가들에 맞서 피츠제럴드를 옹호했다. 그는 피츠제럴드의 글이 지닌 아름다움이 그의 결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그가 죽기 직전에 쓴 작품 마지막 거물은 망쳤고, 모르면 몰라도 그 작품은 미완성인 채로 남겨 두는 편이 최선이었을 거라고 헤밍웨이에게 말했다. 아마 샐린저가 피츠제럴드에게 내린 최악의 평가였을 것이다.

 

우연한 만남은 샐린저의 인생에서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종종 딱 정확한시기에 적절한 인물들을 만나곤 했다. 휘트 버넷의 제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샐린저는 아마 연기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이 어떤 정착지를 원할 땐 헤밍웨이를 만났고, 리틀브라운앤드 컴퍼니의 편집자들에게 학을 뗀 후 자신과 비슷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는 제이미 해밀턴이 찾아왔다. 작가로서 전문적인 확신이 필요했던 때에 윌리엄 숀이 등장했고, 절망에 빠져 기력을 소진해 버릴 위기에 처했던 1955년에는 클레어가 돌아왔다. 러니드 핸드 판사와의 우정 역시 그러한 행운의 전형적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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