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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저것

퍼오인이 끝났다

ㅅㄴㅐ 2016. 7. 29. 22:00

* 대략 뭉뚱그려서 쓰긴 했지만 퍼오인의 전 시즌 스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 애정과 증오를 넘나듭니다

* 너무 슬퍼요




퍼오인은 선뜻 추천하기가 어렵다. 일단 전체 에피의 수가 100화를 넘어가며 내용도 상당히 방대하고 시즌이 지날수록 아예 장르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처음엔 수사 콤비물처럼 시작한 이 드라마는 장엄한 디스토피아 SF로 끝을 맺으며 그 과정도 상당히 다이나믹하다. 그동안 등장했던 주요 인물들의 가치관과 성격의 변화는 또 어떻고. 5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또 엄청 긴 시간이 흐르며 시즌 1과 마지막 에피소드의 그 인물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변화하고 성장했다. 5년이란 시간은 실제로 사람이 완전히 변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드라마와 함께 열심히 달려온 사람이라면 서서히 변화하는 인물들과 사건들에 충분히 녹아와서 그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겠지만 (아니면 캐붕에 신나게 욕을 했겠지만) 결국은 그렇게 차근차근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뉴비에게 이 드라마를 권하기 어렵게 되어버린 것이다. 흑흑 그리고 100화가 넘어가는 화 중에는 정말로 드라마 장면중에서 걸작으로 남을 장면들도 있지만 조악하고 쓰레기 같은 에피소드들도 있기 때문에 또 그렇기도 하다.

 


시즌 5에서 쇼는 말했지 "조지오웰은 낙관적이었어



항상 드라마를 같이 보는 언니와 진지하게 토론을 하곤했다. 이 드라마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는 거 맞냐고. 점차 거대한 SF가 되어가면서 상황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게 흘러가는데, 세계를 구하는 것에 앞서서 이거 등장인물들의 목숨의 안위는 보장되는 거냐고. 정답은 언제나 노였다ㅎ... 사실 메인 주인공인 핀치와 리스 그리고 쇼와 루트(그래도 퍼스코는 열외로)의 몰살엔딩으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각본이었다. 항상 선의와 도덕을 가장 중심으로 행동하는 인물들은 그렇지 않은 인물들에 비해서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며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들이 자신을 제어하지 않고 뚜렷한 목표를 가진 절대적인 상대방에게 제압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상황은 점점 구렁텅이가 된다. 사실 시즌 후반에서는 아예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온 온갖 추잡한 욕망들만 보이는 듯했다. 사마리탄과 머신간의 전투력은 점점 벌어졌으며 사마리탄이 인간들을 교묘하게 조종하기 위해 벌이는 짓들은 아주 가관이었다.  머신이 사마리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어보였다. 머신은 사마리탄과의 10억번의 전투 시뮬레이션 동안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사실 스토리상으로만 보자면 주인공들의 행복을 위해, 그들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싸울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니까. 농담반 진담반으로 핀치가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하이오에 가서 농사짓고 자급자족해서 살면 그 이상의 해피엔딩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리스는 핀치가 가면 따라갈거야

하지만 이 결말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드라마의 모든 인물들은 자기가 세계의 모든 짐을 짊어져야 한다고 여기는, 당장의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쇼하고 루트는... .... 그렇고요... 핀치는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일어났던 모든 일을 자신이 떠안아야 하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리스는 삶의 목표가 불분명한채로 눈앞의 것만을 쫓기에 급급한 인간이다. 이들은 다들 일종의 정신병을 앓는 상태라 자신들의 문제가 자신들의 해결범위 밖에 있는 것들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으며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도 정당함을 위해서라면 죽음을 택할 인물들이다. 사실 모두 안다. 그들이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음을. 그렇지만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인물이었음을.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게 해피엔딩이었지도. 그리고 우리가 그런 인물들을 사랑한 것도 사실이다.



 


난 항상 놀란의 각본이 사랑에 대해 역설한다고 생각했다. 두 형제의 각본 모두 다 그렇다. 인셉션과 인터스텔라.. 좀 넓게 보면 다크나이트 시리즈까지 모두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여기서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놀란은 연인간의 노말한 사랑에 대한 묘사는 개인적으로 정말 구제불능이다ㅋㅋㅋㅋ) 나는 인터스텔라를 매우 싫어하지만, 딸에게 '너를 사랑한다'라고 전하기 위해 우주를 건너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아버지(놀란...)에 대해서는 그것이 크리피할지언정 진정성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우주를 뛰어넘는 사랑에 대해 정말로 그렇게 리터럴리 우주를 넘는 것으로 표현하다니... 너무 직설적이어서 놀랐곸ㅋㅋㅋ 앞서서 퍼오인이 디스토피아 SF 라고 했지만 작은 놀란의 각본 답게 이 드라마도 결국은 사랑을 노래한다. 애초에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사람들이 모여서 또 하나의 유사 가족을 형성하며 또 결국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512에서는 너무나 명확하게 이것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서로 만나고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엄청 직설적인 질문. 시즌 초반에 나왔던 넘버들의 이야기도, -물론 거기엔 마피아들의 싸움이나 노답인 치정사건도 많이 섞여 있지만,-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걱정했기 때문에 일어난 작은 이야기들이다. 시즌 전체를 아우르는 커다란 대사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라는 대사는 조나단 놀란이 쓴 것이다. 이사람 걍 사랑꾼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던 모든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됐는가? 또 다시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 않았는가


좋은 건 크게 보기

 

이 드라마에서 가장 사랑했지만(이 사랑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네~) 시즌 내내 제일 욕하면서 봤던 캐릭터는 존 리스이다. ~리스~. 

퍼오인에 빠지게 되는 사람들은 정말 서로 유사한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일단 보기 시작하면 존 리스가 너무 멋있어서 정신을 못차린다. → 헉 핀치가 너무 좋다. 사장님!!!! → 헉 베어가 너무 귀여워 → 헉 쇼.. 헉 루트.. 헉 푸스코... 10명중에 6명은 이거랑 레알 똑같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즌 초반의 존리스는 정말 멋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폐인이 된 전직 군인.. 스파이... 사연 있는 남자.. 슬픈 눈과 조각같은 얼굴. 그의 과거들이 서서히 드러나며 그 과거의 망령들과 얽히고 설켜서 버둥대는 잘생긴 짐 카비젤을 보는 것은 정말 매우 흐뭇한 일이었다. 하지만 존리스의 과거의 망령들은 너무 깔끔하게 시즌 2에 마무리 되어 버리고, 스포트라이트는 기계와 새로운 인물 루트와 쇼의 캐릭터성에 더 집중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존리스는 얼굴마담으로 서서히 전락됨. 그리고 맨날맨날 시청자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행을 일삼는데 이걸 캐붕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시즌 몇 개에 걸쳐서 꾸준히, 한결같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ㅋㅋㅋㅋㅋ 존리스가 또 뭘 했다 이러면 걍 반응이 다들 존리스가 또...? 였다ㅋㅋㅋ

갑작스러웠던 카터와의 키스(..)와 죽음 뒤 시청자들 또한 멘붕이었지만 제일 혼란스러웠던 건 좐리스의 정신상태였다. 무려 몇 에피소드에 걸쳐 멘탈 못 부여잡고 유리멘탈 두부멘탈 도토리묵 멘탈 아주 잘게 빻인 모습을 보여주며 신명나게 한결같은 캐붕을 선사하셨다. 왕년에 CIA 넘버원 스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 정신 상태에 언행ㅋㅋㅋ 정말 믿을 수가 없었음.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아예 메인 스토리에서도 빠진 것처럼 보이는데, 시즌 후반에는 스토리상 번호 개개인보다 머신과 사마리탄의 대결이 중점이 되기 때문이다. 존리스는 위장신분인 NYPD로서 번호 담당을 맡게 되고 주 스토리라인인 머신쪽에는 어떠한 권한도 행사하고 있지 못한다. 맨날 보면서 그랬다. 존 리스는 지금 핀치랑 루트가 어떤 상황인지 알기는 하는거야?!? 고답이!

그럼에도 나는 존리스를 용서했으며 그를 욕하던 내 자신을 버리고 회개하여 새롭게 태어났다. 존리스님은 죄가 없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존리스는 삶의 목적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게 무엇이든 그것 하나만을 향해 돌진하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죽음을 각오한다. 그리고 그 목적이 사라져버리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세상을 멸망시켜 버릴 자이기도 하다. 그의 어두운 칼날은 삶의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만 사용된다. 악한 자들에게는 날서린 모습을 보여주지만, 루트와 쇼와 다르게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는 자도 그다. 그는 언제나 그의 어두운 면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것을 조절한다. 그리고 그는 그 어두운 과거와 복잡한 성정에도 불구하고, 약자들에게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며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는 법을 알고 그것에 매우 충실하다. 그렇기에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쪽 양극으로 극단적인 타 캐릭터들에 묻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최선을 다해 변호하고 있음) 512를 보면서 정말 착잡했다. 리스가 핀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행복할 방법이 없었을까? 하지만 뉴욕의 이스트강에서 떠오르는 존리스는  생각만해도 마음 한켠이 찌르르 아파오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알아오던 존리스가 맞다. 그래도 끊임없이 그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한다

결말도 너무나 존리스다웠다. 이러나 저러나 핀치를 최고로 우선하고 있는 머신이나 리스의 이해관계는 너무 딱 맞아 떨어졌을 것이다. 그에게 목표는 하나이고 그것을 지키는 삶은 언제나 가치있는 것이었다. 리스 목숨 파리목숨이라고 안타까워 하는 건은 시청자들 뿐이지 존리스는 정말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사실 결말에 대해 더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내가 충격을 받았던 것은 사실 결말의 방식보다 퍼오인이 끝났다는 거였다. 이제 욕할 대상이 없어졌다. 맨날맨날 휴방에 몸서리치지 않아도 되고 주요인물들의 캐붕에 몸을 뒤틀 필요도 없어졌다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스핀오프? 무슨 이야기를 할 지 모르겠다. 리스랑 핀치랑 쇼랑 루트랑 퍼스코랑 베어가 보고 싶다ㅠㅠㅠ 

+ 핀치의 마지막 행보에 대해서는 놀란 각본의 특성상.. 허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슬프지만. 그는 <인셉션이 열린 결말인가요? 레오는 아들딸을 만났는가 못만났는가? 이것은 꿈인가요? 아닌가요?> 했을 때 <야 마지막에 가족 만나는거 봤잖아 니들 왜이래?!> 했던 사람이었고 다크나이트라이즈에서 <알프레도가 만난 건 허상인가요? 꿈인가요?> 했을 때 <해피엔딩입니다> 한 사람이다. 그는 이 방식으로 자신의 해피엔딩을 걍 만든거다. 걍 보이는 게 보이는 거 그대로임ㅋㅋㅋㅋㅋㅋㅋㅋ

+ 사실 이탈리아 장면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찌됐든 성장하고 달라진 핀치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더이상 과거의 망령을 쫓아다니는 자가 아니다. 기왕 그렇게 끝난거, 그냥 그가 해롤드 마틴으로서 가끔 도서관과 지하철을 생각하면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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