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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에 대한 평은 정말 홍해가 갈리듯 갈라지고 말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미워할 수 없는데 정말 너무 사랑스러운 몇가지 요소 때문이다. 그건 봉준호가 전하고자 하는 교훈적인 이야기 때문이거나 그가 이용한 여러가지 메타포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결국 다정함과 애틋함 때문일 것이다.
옥자에서 가장 끝내주는 대사는 이거다. 통역은 신성하다 translation is Sacare
소녀와 슈퍼 돼지의 언어를 초월한 사랑과 우정을 다루면서, 영화에서 통역은 한번도 진지하게 하지않는 야매 통역사들이 나오고, 감독은 한국배우와 외국배우를 섞어 온갖 메타적인 레이어로 가들한 잡탕 장르 영화를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조잡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비장하게 나오는 대사가 저거다. 통역은 신성해! 와우 끝내주는 대사야! 뭔가 있어보여!
그리고 이거도 Mija Try learning English It opens new doors.
두번 째 이 대사는 극장에서 옥자를 본 관객이거나 한글 자막을 깔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발견해내지 못할 대사인데 영어 자막을 깔고 보았던 관객만이 발견할 수 있다. ALF가 미란도 기업으로부터 트럭을 탈취하고 유유히 자신들만 트럭에서 탈출하며 옥자와 미자에게 안녕을 고할 때, 엉망진창으로 미자말을 통역해서 모든 사건의 발단을 만든 케이가 마지막으로 탈출하며 말갛게 말한다.
내 이름은 구 순범이야~
한국 관객들만 그 이름이 가진 친숙함과 촌스러움을 알기에 살짝 웃게 된다.
하지만 영어 자막은 이렇게 나온다.
미자야 영어를 배워~ 새로운 세계가 열릴거야 (칸에서는 또 다른 자막으로 장난을 쳤다고 한다.)
어쨌든 순범이는 미자를 아주 다정하게 멕인다.
나는 스칼렛 요한슨과 최민식이 함께 나왔던 뤽 배송의 루시를 미국에서 관람했다. 그 영화에서 최민식은 오직 한국어만 쓰고 그 한국어는 기계 번역기를 거쳐서 딱딱한 변조 음성의 영어로 다른 등장인물들과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니까 최민식이 하는 한국어 대사에는 자막이 없다. 그 장면의 불편함과 이질감과 숨막히는 공기를 전달하기 위해 소품으로 언어가 사용된 것이다. 같이 본 미국의 친구는 그걸 보고 나한테 한참 물어보았었다. 그 기계 번역기가 정말로 최민식의 말을 똑같이 제대로 해석한 것이 맞기냐 한 것이냐고. 그렇게 생각할 만하기도 한 게 그 장면은 진짜 너무 이상했다.
로건에서 나오는 클론을 가진 소녀 로라는 영화내내 거의 말을 하지 않거나 중얼대는 스페인어만 쓴다. 그리고 그 대사들은 자막이 없기 때문에 관객들은 로라의 대부분의 대사를 차지하는 그 스페인어를 뭔 소리인지도 모른 채 그저 듣고만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은 로건과 로라의 소통 부재, 이해심의 상호 부족 등을 강조하기 위해서 연출된 방법이다.
사실 옥자에서 사용되는 스티븐연이라는 배우 자체는 메타한 조크로 가득찬(그게 재미있든 재미없든…) 이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또다른 하나의 조크였다. 아시안계 미국인인 스티븐연의 한국말은 상당히 귀엽긴 하지만 엄청 유창하지는 않다. 코난은 통역사로 자신의 쇼에 스티븐을 대동하지만 본인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스티븐이 얘기하면 주변 한국 사람들은 그를 그저 귀엽게 바라본다. 헤이 스티븐 너 지금 제대로 통역하고 있긴 한거야? 이 대사는 똑같이 옥자에도 나온다. 케이 지금 제대로 통역하고 있는거야? 케이가 사용하는 언어는 스티븐연의 언어와 완벽히 같다. 첩첩이 쌓아놓은 레이어는 케이가 말을 하는 순간 제 구실을 못하게 된다. 근데 또 이것도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이라(영어와 한국어와 능해야 하고 스티븐 연이라는 배우를 알아야 한다ㅋㅋ)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레이어이기도 하겠다.
통역은 이 영화의 흐름을 바꾸어 버리는 아주 중요한 연출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미자와 케이의 대사들에는 영어 자막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 관객들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은 외국 관객들에게는 그리 간단한 장면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케이가 미자의 말을 어느 정도 축소시키면서 왜곡시키고 사건에 큰 영향을 끼칠 큰 거짓말을 해버렸다는 것을 당연히 알지만 외국 관객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케이가 그 일을 스스로 모두 털어놓을 때까지 온전히 케이가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통역의 권력이다. 디렉터 봉은 통역의 권력을 한국어에 자유롭지 못한 한국계 외국인이 하는 한국말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이러한 연출은 통역은 신성하다라는 비장한 대사만큼 영화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레이어 중에서 가장 치밀하게 짜여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다정한 순간은 이러한 레이어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바로 그러한 통역의 권력, 언어의 권력이 무너지는 바로 그 순간. 봉은 통역의 권력을 뛰어 넘은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미자와 옥자는 통역이 필요없다. 둘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지만 그들의 소통은 언어를 초월한다. 갖은 학대로 정신을 놓아버린 옥자를 달래는 것은 미자의 귓속말이다. 미자는 날뛰는 옥자에게 다가가 귓속에 무언가 속삭인다. 옥자는 그 말을 듣더니 조용해진다. 미자를 바라본다. 미자야 미안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옥자와 미자를 뺀 다른 등장인물들도 알지 못하고 관객들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영화 내내 애써 농담의 레이어를 만들고 쌓아가며 만들어놓은 비장함을 애틋함으로 스스로 무너뜨리는 순간 나도 무장해제 되었음. 아 이게 진짜 허술해도, 나는 옥자와 미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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