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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디오 빈티지전은 올해 가 보았던 수많은 전시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전시였다. 일단 소파와 오래된 골동품 같은 텔레비전들이 가득했던 전시장이 그러했고, 어두침침한 조명 속에서 포근한 소파에 앉아 한참동안 흑백화면을 응시하다가 다른 곳으로 넘어가게 되는 특이한 동선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다른 블록버스터 전시나 타 갤러리에서 한 수많은 전시들과 이 전시가 다른 점은 전시의 의도가 굉장히 확고했다는 것이었다. 비디오라는 매체를 처음으로 시도한, 바로 그 당시의 생생한 초창기의 비디오 아트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다는 점에서 마치 그 당시의 시간이 새롭게 재현됐다는 점에서 그랬다. 아마도 전시를 하는 데에 그러한 빈티지틱하고 소박하고 따스한 거실 같은 포맷을 선택한 것은 더 이상 벽난로가 있는 거실이 아니라 소파와 tv가 있는 거실로 서서히 바뀌고 발전하는 그 과거의 시대의 회상이나 감성을 떠올리게 하기 위한 새로운 재현으로 이용되었던 것 같다. 1960년대부터 80년대, 비디오와 TV의 보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대중문화가 생기고 발전하던 시기에 비디오 예술 또한 같이 발전하였다. 다양한 작가들은 TV를 새로운 전시공간으로 인식하였고 여러 가지 실험을 심도 있게 진행하였다. TV와 처음으로 만나고 비디오 예술이라는 낯선 장르 앞에 서게 된 당시의 관객들처럼, 비디오 빈티지전의 관객들도 그 시대로 되돌아가 편안한 소파와 빈티지 TV로 꾸며진 거실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전시실에 있던 작가들은 수업시간이나 책에서 모두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비디오 예술의 이름 있는 선구자들이었다. 존 발데사리,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빌비올라, 차학경, 그리고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백남준까지, 퐁비두 센터의 작품까지 끌어온 이 전시는 그 당시의 아티스트를 한 자리에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다.

 

  그들의 작품은 사실 상당히 난해했다. 전공자인 내가 보기에도 그러니 아마 비전공자나, 심지어 전문가일지라도 그들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들은 누가 보기에도 난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해진 스토리나 리듬이 존재하지 않고 약간은 무계획적이고 중구난방의 방법으로 그들이 새로운 매체에 대한 경이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요셉 보이스의 비디오 작품에서 요셉 보이스는 소세지나 생기 같은 전혀 의미없는 상품들을 텔레비전 주위에 늘어놓고, 권투장갑을 낀 채 텔레비전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제스쳐를 계속해서 취한다. 그것은 두려움일까? 저항일까? 둘 다 아니라면 단지 의미없는 행위의 반복일 뿐일까? 레티시아 페런트의 영상에서는 작가 자신이 발에 바늘과 실로 'made in brazil'이라는 단어를 새기는데, 이 고통스러운 행위는 무엇을 나타낸 것인가, 물질만능주의와 상업주의를 비판한 것인가? 군부독재로 인해 자유가 침해되던 그 당시의 현실을 정치적으로 비판한 것인가? 이렇게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고 그에 따라 예술의 담론 형성을 만드는 그 과정이 비디오 예술의 발전이며 미술사 전체를 아우르는 큰 획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마음에 들고 인상 깊었던 작품은 비토 아콘치의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을 다른 수업 시간에서 만난적이 있었는데 신체를 최대한 활용하여 신체 자체를 위한 작업을 하는 작가였다. 전시실에 있었던 작품 <중심들 Centers>에서는 모니터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신체를 사용하며, 그 때 모니터는 비토아콘치의 작품을 옮기는 수단이 아닌 예술의 목적 자체가 된다. 화면 바깥의 관람자를 똑바로 향하는 검지 손가락은 긴장감을 만들고, 관람객을 향한 질문이며 관람자와 작가 사이를 가로막는 모니터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인식이다. 관람자에게는 반영의 공간을, 행위자에게는 물리적 행위 자체를 선사하는 이 작품 앞에서 서 있으며 기술의 발전이 그 당시의 예술가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물론 비디오 아트는 어렵다. 이해하기 쉽지 않고 전혀 의미가 없는 파편적인 결과물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예술가들은 이 낯선 새로운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에 자신의 개념과 감성을 주입시키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초기의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그 실험정신과 도전은, 어쩌면 매체의 홍수로 범람하는 미래를 예견으로 인해 나온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비디오 아트는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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