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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생각

일민 미술관 애니미즘

ㅅㄴㅐ 2014. 4. 3. 00:02

 

 

 일민 미술관의 애니미즘 전시 감상 뒤.

 

 

 

 

"동물도 영혼에 대한 권리가 있을까? 영혼은 설계될 있는 것일까? 중요한 일이 있을때면 항상 기도나 점보기가 성행하는 우리 삶에서 과연 진정한 근대성이 완성된 적이 있을까?"

 

 

 

 

이 전시는 김현진 큐레이터가 기획한 일민 미술관에서의 마지막 전시였다.

왜 마지막 전시였느냐를 놓고는 말이 많았다. 외부적 요인인지 내부적 요인인지 관객들로써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이제 그가 기획한 전시를 더 이상 일민에서 만날 수 없게 되다니 조금 싱숭생숭한 느낌이다. 사실 젊은 나이에 그런 독특한 시각의 기획력이면 어디든 안 불러주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전시도 단연 새로운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전시였다. 애니미즘이라는 크고 포괄적인 주제로 세계를 순회하고 있던 작품들을 재 분류하고 다시 엮었다. 그 과정에서 애니미즘이 샤머니즘과 독특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세계관이 더해져서 전시장의 분위기는 한층 더 차분해지고, 깊어지고 심지어 영적이기까지 했다. 전시는 단순히 사건이나 유물의 전시가 아니었다. 역사적 가치를 가진 물건들은 애니미즘 이라는 공통적 주제 아래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게 되었고 다양한 시청각 자료와 문서 아카이브는 그것들을 뒷받침 해주고 있었다
.

애니미즘이란 동물들, 식물들, 심지어 돌과 사물 같은 무생물들까지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어찌 본다면 말도 안되고, 꿀 바른 듯한 뜬 구름 같은 소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애니미즘은 오랜 과거부터 인류와 함께 있어온 뿌리 깊은 존중 사상이었다. 이 사상에서는 인간이 특별화 되지 않는다. 모두가 수평적이고 평등하며, 사실은 인간이 모두가 평등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애니미즘의 관점에서 위선적으로 보인다고 까지 말한다.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대체 인간의 관점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 일까 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우리의 상식 범주라는 이름 아래 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같은 관점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던 것은 에콰도르에서의 한 시위를 그대로 찍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이었다. 제목은 <.인간적 권리>. 그 시위는 환경 보호에 대한 비판적 관점의 것이었다. 그들의 요구는 환경 보호, 보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보호라는 단어의 쓰임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무언가를 보호한다는 관점 또한 철저한 인간의 관점이다. 인간보다 자연은 약한 것이며,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이란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로 귀결되는 진정으로 뻔한 인간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반기를 든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단어 속에 내재된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이 영상을 보았을 때 좀 충격을 받았는데 얼마나 내 사고방식이 인간적이며 폭력적인지에 대해 비로소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예로 나뭇잎과 비슷한 곤충이나 나뭇가지와 비슷한 대벌레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보고 얼마나 이 작은 미물들이 생존하기 위해 보호색으로 자신의 몸을 지켜왔으며 그렇기에 이러한 자연을 경이로운 것으로 정의 내리며 감탄한다. 얼마나 편협적인 생각인가! 그들은 정말 생존을 위해 그들 스스로를 변장 시킨 것일까? 사실 그런 증거는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들이 인간의 관점으로서 무심코 그런 결론을 내려버린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그들이 인간처럼 싸우고 자신을 보호한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우리가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것 뿐이지.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국의 애니미즘에 대해 이야기한 작가들이다. 우리나라 또한 불교를 중심으로 한 생명존중 사상을 바탕으로 꾸준히 애니미즘이 존재해왔다. 아니 사실은 그 이전, 단군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 곰과 호랑이 이야기부터 시작 할 것이다. 단군 신화는 동물 또한 인간과 같다고 여기며(곰과 호랑이는 인간처럼 생각한다. 인간들을 사랑하고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모든 것엔 영혼이 있다는 애니미즘 사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또한 애니미즘은 고유한 특색을 가지고 발전해왔지만 우리의 전통엔 더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의 결합인데,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이것이 뚜렷이 보여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만신의 감독 박찬경의 작품도 있었다. 그의 사진 작품은 한국 무속신앙의 갑작스런 흥망성쇠에 대해 그리고 있었으며 이번에 개봉한 그의 영화 만신과도 연결 고리가 있었다. 영화 만신은 우리나라에 알게 모르게, 우리의 영혼 속에 내재해온 무속 사상에 대한, 그리고 한 기구한 무속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우리는 은연중에 무속 사상은 미신이다, 비 과학적이다, 라는 이유로 그것들을 밀어내고 멀리한다. 하지만 또한, 은연중에 그것을 찾게 되며 의지한다. 그것은 그것이 진실이건 아니건, 우리의 문화이며 우리의 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엔 혼이 있다. 그것이 무생물일지라도 그것이 존재하는 데엔 이유가 있고 그에 대한 모든 것이 이유이다. 모든 것은 말을 한다. 모든 것들은 서로에 대해 이해해야 하며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것들의 존재를 이해해야 한다. 존재의 이유와 혼. 한국의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은 그렇게 맞닿아 있을 지도 모른다.

 

 

 

 

애덤 아비카이넨의 <3번 유적지의 DNA:CSI 제공> 이라는 익살스런 제목의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전시장 한쪽 면 전체를 가득 채운 그림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것을 그림이라고 칭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건 붓질이 아니고 한 영혼의 호흡이었으니.

애덤은 철과 이야기 하며 그의 작품을 완성했다. 철 또한 그의 영혼이 있다. 작가는 철이 살아온 배경, 겪었던 일들, 하고 싶었던 일들에 대해 토론했다. 철을 녹이 슬고 빨간 물을 그리며, 천 위에 자신을 찍으며, 자국을 내며 이야기한다. 어찌 들으면 설핏 웃음이 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거대한 빨간 핏물들과 만났을 때, 정말로 울부짖는 작품과 마주했을 때, 사실 감히 어떤 얘기조차 꺼내기 힘들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바의 사회는 자연만큼이나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나의 단일한 안정화 과정의 이중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각 상태에 상응하는 사회의 상태가 존재한다."  

-라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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