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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저것

뮤지컬 해밀턴 - her story

ㅅㄴㅐ 2017. 2. 12. 21:55




팀버튼이 그의 신작에서 유색인종 인물의 부재에 대한 비판을 받았을 때, 그는 그 시대에는 유색인종이 별로 없었다는 식으로 항변하여 많은 지탄을 받았다. 우리는 그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다는 것을 알며, 미디어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그 시대의 유색인종을 지워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 시절에 쓰여진 원작을 재현하게 된다면 어쨌든 올 화이트 메일만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아주 게으른 생각이며 새 시대에 나오는 다양한 미디어들은 영리함과 재치로 그 게으름을 조롱한다. 창작자의 의무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올 때, 자신이 다양성에 대해 고민한 지점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린 마누엘 미란다씨는 인더하이츠의 흥행 뒤, 휴가를 떠나기 위해 거쳤던 한 공항에서 알렉산더 해밀턴의 평전을 집어든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10달러에 그려진 아주 잘생긴 미국의 정치인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도 그가 지폐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가 막연히 대통령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통령이 아니고 그냥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해밀턴은, 아메리카 건국의 아버지중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마이너한 위인이다. 그가 18세기의 기이한 악재인 '결투'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사람들을 사로잡을 만한 건덕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초대 재무부 장관 이름 모르잖아) 린 마누엘 미란다씨는 심드렁하게 집어 들었던 평전에 무섭게 빠져든다. 한평생 입으로 공을 세우고 그 입으로 스스로 적을 만들고 결국 또 그 적에게 그토록 드라마틱하게(!) 죽는 잊혀진 비운의 건국의 아버지. 이야기꾼은 좋은 소재를 단박에 알아본다. 


남자 백인들만 가득한 역사를 현재의 무대에 다시 올리며 그는 모든 메인 캐스트들을 흑인과 라티노로만 구성한다.(사실 딱 한 사람 남성백인이 있는데 이는 극의 영웅들과 대립하는 역할인 영국의 조지 왕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조나단 그로프) 린 마누엘은 알렉산더 해밀턴에 너무 간단하게 자신을 대입한다. 라티노들이 모여 살던 뉴욕의 저 끝, 워싱턴 하이츠에서 무대만을 꿈꾸며 자랐던 젊은이가, 카리브해에서 자신의 꿈과 비전만을 안고 낯선 땅에 발을 딛은 애송이 알렉산더 해밀턴에 빙의하기는 세상에 너무나도 쉬웠던 것이다. 

웃기게도 백인 건국 신화를 흑인과 라티노로만 재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극은 엄청난 전복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일단 정말 매우 잘생기고 피지컬 좋은 흑인 배우가 초대 대통령인 조지워싱턴 역할을 하며 시원시원한 곡을 뽑아내는 것만으로도 극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벅차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조지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모두 흑인 배우들이 맡았다)의 배우들이 백악관을 방문하여 링컨의 초상화 앞에 섰을 때,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그 말 못할 감정은, 오바마 대통령이 두 딸과 함께 브로드 웨이에 해밀턴을 보기위해 출근도장을 찍는 파파라치 사진을 보는 것만큼 굉장히 흐뭇하여 벅찬 감정이다. 그러한 사진들을 보면 아직도 세상은 진보하고 있고 살만해지고 있다는 게 맞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또 흥미로웠던 점은 역사history에 가리워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재생산했다는 점이다. 나는 이 뮤지컬을 접하고 이 서사 자체에 빠져 팔자에도 없는 미국사를 꽤 두꺼운 책으로 두 세권 읽었는데 대부분의 역사서가 그렇듯이, 미국의 건국사에서 또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언급되는 파트는 찾을 수 없었다. '알렉산더 해밀턴의 아내'로 이름이 언급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실제로도 주색잡기로 유명헀던 정치인이었고 실제로 불륜 스캔들도 냈다. 하지만 그 때는 18세기였고, 그때는 이것을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기 때문에 사실 이건 야사가 아니면 언급되지도 않는 이야기이다. 나는 정말로 알렉산더 해밀턴이 불륜 스캔들을 냈을 때, 그의 아내 일라이자가 어떻게 행동했는 지가 궁금했다. 그녀가 해밀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던지, 냉담하게 쳐다도 안보고 이혼을 했다던지 하는것, 나는 그녀의 감정과 그녀가 받은 상처가 어땠는 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히스토리는 이것을 언제나 얼버무린다. 

뮤지컬에서는 해밀턴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공간을 마련하여 이야기의 바깥에 서 있던 그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그것은 대부분이 픽션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래로 재현되는 그녀의 감정과 상처들을 보면서 실제 일라이자 해밀턴이 어떤 사람이었는 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극엔 비중있는 두 여주인공이 나온다. 한 사람은 안젤리카,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 일라이자. 1막에서 당당하게 혁명과 자신의 선택에 관해 노래하는 안젤리카에 비해서 일라이자는 항상 극 뒤에서 서서 노래한다. 그녀는 언제나 해밀턴을 말리고 저지하는 역할이다. 해밀턴의 무모한 폭발력은 그가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음으로 달려가는 길임을, 그녀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라이자는 2막이 되어서야 네러티브 바깥으로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과 배신감에 대해 화를 내고 슬퍼하며 그럼에도 믿을 수 없는 용서로서 자신을 당당히 드러낸다.  








나는 항상 이야기 뒤에 서있기만 했죠

더이상 나는 눈물을 흘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어요


누가 살아가며, 누가 죽고, 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해줄까요


나는 50년을 더 살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아요

난 당신 곁에서 싸웠던 군인들을 인터뷰 했어요

당신의 모든 글을 읽고 이해하려고 했어요

나는 계속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아아 당신이 살아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나는 워싱턴 기념비를 위해 투자를 했어요

노예 반대 연설도 했어요. 당신이 시간이 있었다면 했을 것들.

만약 내 시간이 다한다면- 저는 이걸로 된걸까요


누군가 당신 이야기를 해줄까요? 누군가 내 얘기를 해줄까요?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자랑스러운 것이 있답니다

저는 뉴욕에 첫 사립 고아원을 세웠어요

수백명의 아이들이 그곳에서 자랐어요

모든 아이들의 눈에서 당신을 본답니다 알렉산더.


당신을 어서 보고 싶어요. 오직 시간만이 남았네요.




눈물줄줄 가슴절절한 해밀턴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 대서사시의 마지막 넘버는 일라이자의 것이다.  역사에 로렌스와 멀리건 라파옛이 남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일라이자 덕분이었다. 그녀가 해밀턴의 행적을 쫓으며 그와함께 했던 전우들을 그녀가 모두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그들은 이름이 남고 뮤지컬에 남을 수 있었다. 그녀는 먼저 죽은 해밀턴의 모든 글을 정리했고 그녀 스스로의 정치적 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해밀턴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위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 후에 그가 뮤지컬로 재창작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일라이자의 공헌이었다. 이 마지막 넘버에서 일라이자는 모든 사람들을 역사에 남기는 서술자의 역할을 하지만, 또한 동시에, 누군가 이런 내 이야기도 누군가 해줄까요? 하고 반문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라이자 또한 이 뮤지컬을 통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일라이자가 노예 반대 연설을 한 것도 알고, 뉴욕의 첫 고아원을 세운 여성이란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녀의 노래를 통하여, 일라이자는 자신의 말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역사에서 생생히 살게 했으며 또한 동시에 자신 또한 남게 된 것이다. 이 자체가 너무나 역설적인 동시에 너무나 감동적이며 린은 역시 천재만재인 것이다.




His story로 시작해 Her story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자신의 자랑스러웠던 행적을 이야기하며 고개를 쳐들때 반짝이는 배우님의 눈이 정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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